YD 찾아가는 새벽묵상

2020년2월14일(요한복음11:38-44)
2020-02-14 06:22:33
부교역자
조회수   34
말씀제목 죽은 사람을 살리는 예수님의 새 창조 행위
말씀일 2020-02-14
오늘의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요11:40)
말씀내용 오늘 본문은 어제 이어 나사로의 대한 이야기입니다. 11장 초반부터 시작된 나사로의 병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을 병이라고 11장 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제 본문에서는 그 병든 나사로가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즉 나사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병이 걸리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나사로의 무덤은 굴을 파서 시체를 넣은 후 그 입구를 돌로 막아 놓은 형태였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벌써 4일이나 지나고 날씨도 따뜻했기에 시체가 썩는 냄새가 났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었다면 의학적으로 이제는 완전히 끝난 것입니다. 더 이상 살아날 가능성은 1도 없는 상태입니다. 부활이라는 소망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살아난다는 모든 희망을 버린 벼랑끝에서 반전의 명수이신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예수님의 삶은 출발부터가 반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이 땅에 성육신 하신 것도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전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 땅에서 보여주신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초자연적인 신비한 기적들은 인간의 상식을 깨는 반전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또한 세상의 모든 이성과 합리와 과학의 모든 틀, 프레임을 뒤집어엎는 놀랍고 놀라운 신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야기를 통해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바로 그것은 우리와 같은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즉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을 우리 모두가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오늘 본문 42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자신이 생명을 주관하는 절대 권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마음은 완고하고 강팍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생각해보면 기적과 믿음은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부활하는 사건을 통해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대로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0절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광은 절대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만이,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믿음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찾아 볼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순종입니다. 즉 순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주님께서 하셔야 할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먼저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일, 그 명령을 잘 듣고,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함께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3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1) 돌을 옮겨 놓으라(39절)
2) 나사로야 나오라(43절)
3)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44절)

이 세가지 예수님의 명령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순종합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의 반응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덤에서 죽어 냄새가 나도록 썩어 들어가던 나사로가 얼굴은 수건에 싸여있고, 손과 발과 온몸은 베로 동인 채로 순종하여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 죽은 사람이 나오라는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 무덤에서 살아 나왔기에 어쩌면 이것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과 같은 이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는 이제 얼마 후에 벌어질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의 돌이 옮겨진 상황에서 죽어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세상 모든 만물의 창조주요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죽은 나사로가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벌떡 일어나 무덤을 걸어 나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듣는 존재로 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를 부르실 때, 즉각적인 반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합당한 행동을 나태내야 합니다.

저의 집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있습니다. 엄마와 딸입니다. 그런데 이 두 마리가 조금 다릅니다. 엄마의 이름은 ‘초코’, 딸의 이름은 ‘짱아’입니다. 제가 어린 강아지의 이름 ‘짱아야’라고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환한 얼굴로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대며 순식간에 달려옵니다. 그러면 저는 그 강아지를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고, 맛있는 간식도 줍니다. 그러나 엄마 강아지를 부르면, 이 녀석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몸이 무거워서 인지, 오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 번 불러도 들은 척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못들은 척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그러다가 제가 좀 더 강한 목소리로, 손짓까지 하며 부르면 그때서야 어슬렁 어슬렁 옵니다. 어떤 때는 오기싫어서 낮은 포복으로 엉금엄금 기어오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이 귀찮다는 것입니다. 나를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제발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주인이 부르는데, 들은 척 만 척 딴청을 피우는 것은 주인에 대한 강아지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두 마리의 강아지 중 누구를 더 예뻐하겠습니까? 당연히 어떤 상황에서도 저의 부름에 바로 바로 응답하고 기쁨으로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새끼 강아지입니다. 저는 이 강아지들을 키우면서 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주 생각해봅니다. 나는 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 그 분의 부르심과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자세가 올바른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을 때,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덤의 돌을 옮기는 것과 온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감싸고 있는 것들을 푸는 것은 죽은 나사로의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님께는 일도 아닙니다.
그 일을 본인 스스로가 하늘의 신적인 능력으로 하실 수 있지만, 함께 하는 우리들에게 맡기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을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함께 일하는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세워 가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작은 일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께서 명령하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주인의 명령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그 명령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나사로가 있던 곳은 죽음의 장소였습니다.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는 무덤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사도바울이 로마서 6장 23절에서 기록한 것처럼, 나사로가 있던 곳은 죄악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고통과 절망과 좌절과 슬픔의 장소로서 가기 싫은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바로 그런 어두운 곳에서 머물러 있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부르셨습니다. 그곳에서 탈출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 음성은 더 이상 죄악의 장소에 있지 말고 그곳을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더 이상 고통과 절망과 좌절과 슬픔의 장소에 빠져있지 말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악한 사단의 권세아래에서 더 이상 허우적거리지 말고, 하나님의 권세, 예수님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그런 죄악의 장소, 하나님의 음성보다 악한 사단의 음성을 더 가까이 듣는 장소에 계시다면, 우리를 애타게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석아 나오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어서 나오라!’

이 음성을 들은 우리는 적극적인 반응을 해야 합니다.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못들은 척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가 더 좋사오니’ 하면서 나가기를 꺼리지 말아야 합니다. 과감하게 모든 것을 벗고 일어나, 주님께로 달려가야 합니다.

구약시대 가운데 매우 어두운 시대였던 사사시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옷니엘부터 시작된 사사들의 사역이 약 350여년간의 영적으로 매우 혼탁했던 시대를 마지막 13번째 사사 사무엘로 말미암아 그 대단원의 막이 내리고, 드디어 사울 왕을 시작으로 통일 왕국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을 합니다. 당시 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매우 불량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이었지만, 행실이 매우 나빠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사무엘상 2장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행하는 매우 타락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엘리가 야단을 쳤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함께 자라던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집니다. 사사기 기자는 그 시대상황을 사사기 3장 1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은 아이 사무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로 알고 그에게 달려가 ‘당신이 나를 부르셨습니까? 내가 여기 있습니다’했더니 엘리가 하는 말이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다시 들어가 누우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기를 3 번이나 반복하자, 그제서야 엘리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것으로 깨닫고 그에게 또 다시 너를 부르는 음성이 들리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반응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 사무엘이 자기 처소에 누웠는데, 자신을 부르는 음성이 들려 엘 리가 가르쳐준 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대답을 했더니,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일어날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아이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잘 듣고서,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고 들은 대로 자세히 엘리 제사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엘리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사무엘에게만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삼상3:21)

언제 어느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지 알 수가 없기에 우리는 항상 주님의 코드에 맞춰서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소리를 익숙하게 들을 수 있도록 주님의 사이클, 주파수, 채널에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들려진 음성에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시내산으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과 성막제도를 주십니다. 그 말씀을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또한 말씀하신 그대로 성막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그는 요단강을 건너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종된 자로서 당연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온전하게 들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은 너의 아들, 솔로몬에게 넘기라고 하시는 음성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전을 지을 모든 준비만 해 주고 성전을 짓는 일은 아들에게 넘기는 참 순종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으로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땅에 인간의 옷을 입고 성육신하셨습니다. 자신이 피조한 인간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를 잇기 위해, 너무나 무서운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비참하게 죽기 위해 우리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피조물 된 인간이 순종할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 집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하인들의 순종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문둥병의 걸린 나아만 장군이 어린아이 피부처럼 깨끗하게 치료된 것 또한 그의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순종이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순종이 반전의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죽은 나사로 또한 순종함이 만들어 낸 기적과 반전의 드라마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능력도 당연히 없습니다.
홍해와 같은 문제, 여리고 성과 같은 고난, 골리앗과 같은 위기를 이기고 뛰어넘고 승리할 능력이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작은 일들을 통해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돌을 옮겨 놓으라 2)나사로야 나오라 3)풀어 놓아 다니게하라

이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기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삶에 작은 일부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순종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주님께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위협하여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종의 믿음으로만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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