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화

2017년 12월 17일


고린도는 문화와 상업이 발달한 고대 헬라의 도시입니다. 고대에는 많은 신전들이 있었고, 신전을 섬기는 여사제들은 낮에는 정숙한 사제의 모습을 하였지만 밤에는 거의가 창녀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의 여사제들을 방탕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졌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가이오의 집에서 시작된 교회로 추측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1년 6개월을 머물며 교회를 섬겼고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한 것은 신전의 여사제들처럼 방탕한 여인으로 오인할 것을 염려하여 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옛 아테네의 시인이며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고린도화 되다’(corinthianize)라는 동사를 만들었는데 그 의미는 방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고대 고린도가 정신이 황폐하고 성적으로 문란했던 것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영이 황폐화되면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이 가중되는 법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영을 다듬고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창4:7). 영이 황폐화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영성 친화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스크루테이프라는 고참 악마가 한 젊은이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과업을 가지고 있던 이 악마의 조카 웜우드에게 충고의 편지를 보냅니다. 자신들이 방심한 탓에 젊은 기독교도가 된 그 남자가 자신의 일생을 그리스도의 일생으로 간주하는 것을 확인하라고 충고합니다. 사실은 하나님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도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기 위하여 졸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파괴된 영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시험(test)을 하시지만 시련(tempt)은 주지 않으십니다. 사탄은 시련을 주지만 시험은 하지 못합니다. 모든 시험은 선택의 기회를 줍니다. 사탄의 시련은 우리를 파괴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우리를 성장시키는데 사용하십니다. 사탄은 우리를 파괴하고 우리로 하여금 인간관계와 환경과 모든 상황을 파괴하게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하고 우리로 하여금 관계를 회복하고 환경과 친화하게 하십니다. 로널드 롤하이저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생명을 얻는 영성이든, 생명 파괴적 영성이든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 파괴적 영성은 사탄적 영성입니다. 생명을 얻는 영성은 신적 영성입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고 합니다. 인간이 패배하지 않는 것은 파괴하지 않을 때입니다.